지금 바로 여기에 있음
 

색색의 라텍스 페인트가 유리판을 캔버스 삼아 궤적을 남긴다. 궤적이 굳고, 유리판에서 떼어진다. 이는 곧 접혀서 부피를 가진 덩어리가 된다. 수많은 덩어리가 바닥에 분별없이 늘어져 있다. 감상자는 바닥에 놓인 덩어리-조각을 자유롭게 만지고, 들고, 옮길 수 있으며, 쌓아서 탑을 이룰 수도 있다. 황아일의 〈85개의 회화 조각〉은 ‘그렇게’ 존재한다.

성북예술창작터 1층 공간에는 바닥 이곳저곳에 흩어져 자리한 회화 조각이 있다. 〈85개의 회화 조각〉을 만지기 위해서는 몸을 웅크려 바닥으로 손을 뻗어야 한다. 처음에 색상의 다채로움을 시각적으로 감지했다면, 회화 조각을 들어보고는 무게와 질감, 세밀한 무늬를 촉각으로 느낀다. 잠잠한 전시 공간에서 몸을 굽혀 회화 조각과 접촉하고, 이것으로 탑을 쌓기까지의 과정은 수행(修行) 혹은 명상처럼 느껴진다.

<85개의 회화 조각은 회화이자 조각이자 건축이라는 점에서 불교적 시간관을 내포한다. 유리판을 캔버스 삼아 자리 잡은 라텍스 페인트는 회화로, 그것을 떼서 접었을 때는 조각으로, 그것을 쌓았을 때는 건축으로 볼 수 있다. 시간상으로 구분했을 때 ‘회화-조각-건축’ 각각은 ‘과거-현재-미래’를 암시한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라는 시공간―전시공간에 동시에 존재한다. 전(全) 과정의 시간이 곧 한 데 있으므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뉘지 않고 현재로서 만개한다.

광명의 부처인 비로자나불의 세계에서, ‘시간’은 객관적 공간에서 어떠한 사건이 내용으로서 차례차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이라는 개념은 완전히 폐기되며,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는 모두 현재의 순간에 포함된다. 또한, 이 현재의 순간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연(세계)과 융화하는데, 그것을 감각으로 알아내는 바로 그 순간이 ‘영원한 현재’이다. 그렇기에 〈85개의 회화 조각〉에서 대상을 직접 만지는 감각 경험은, ‘회화-조각-건축’이라는 영원한 현재에서 그 존재 자체를 온전히 대면하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재현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존재를 확인하는 공간이다.〈85개의 회화 조각〉을 이루는 그 무엇도 홀로 생겨나는 법이 없다. 황아일이 라텍스 페인트로 회화를 시도했기에 회화 조각이 있을 수 있었고, 회화 조각과 감상자가 있었기에 탑을 쌓을 수 있었다. 모든 존재는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된다는 연기(緣起)의 원리에 따라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떤 것이든, 모두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존재적 가치가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타자와 지대한 관계를 맺으며 공간을 차지한다. 미물에서부터 거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나’를 포함한 온 존재가 서로 연기를 통해 우주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생명현상에 참여하고 이를 전개한다. 결국,〈85개의 회화 조각〉은 과거나 미래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시간에 함몰되기보다는 영원한 현재, ‘지금 바로 여기에 있음’에 집중하며 온 세상의 수많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자세를 제시한다.

땡땡 콜렉티브/최수연

Right Here, Right Now

Colorful latex paint leaves a trace using glass plates as a canvas. The trajectory is solidified, and detached from the glass plate. It soon folds into a mass with volume. Countless lumps sag indiscriminately on the floor. The viewer can freely touch, lift, and move the lump-sculpture

placed on the floor, and build it up to form a tower. Ail Hwang’s 〈85 Paintings〉 exists as such.

 

On the ground floor of Seongbuk Young Art Space, there are pieces of painting scattered on the ground from place to place. You have to curl up and reach out to the floor to touch the 〈85 Paintings〉. You can notice the variety of colors, at first sight, then pick up the pieces of painting

feeling their weight, texture, and fine pattern tactually. It feels like performance or meditation that all the processes you make in this silent exhibition space from bending down and contacting with the pieces to building a tower with them.

 

<85 Paintings> implies a Buddhist view of time in that it is a painting, a sculpture, and an architecture. Latex paint, placed on a glass plate as a canvas, can be viewed as a painting, when it is removed and folded, it becomes a sculpture, and when it is stacked, it can be viewed

as architecture. When divided in time, each of ‘painting-sculpture-architecture’ implies ‘pastpresent-future.’ However, they exist simultaneously in the space-time of the ‘present’ and the exhibition space. Since the whole process has time in one place, time is not divided into past,

present, and future, but is in full bloom as the present. 

 

In the world of Vairocana Buddha, the Buddha of Light, ‘time’ is the fact that events take place one after another in an objective space. Therefore, the concept of time is completely discarded, and the past, present, and future are all included in the present moment. In addition,

this present moment constantly moves and harmonizes with nature(the world), and the very moment to recognize it through the senses is the ‘eternal present’. Therefore, the sensory experience of directly touching an object in 〈85 Paintings〉 is an attempt to fully face its existence itself


00collective/Soo Yeon Choi